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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민정책 변화가 더이상 자국 내부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머물지 않고 세계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고 있다. 세계 농산물 공급망의 핵심축인 미국 농업 역시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첨단 기계화와 자동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 농업이지만, 실제 생산현장에서는 여전히 이주 노동자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과일·채소·원예작물과 같은 노동집약적 품목은 대규모 계절 노동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민정책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최근 미국 내 이민 단속 강화와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이 농업 노동력 부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농업은 이미 농민 고령화와 청년층의 농업 기피 현상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이주 노동자 이탈까지 겹치면서 농업현장의 인력난은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 전체 농업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며, 전체 농장의 약 70 가 이주 노동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는 농업인력 15만여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 노동력 부족은 단순한 인건비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생산단계에서는 파종과 수확 시기의 지연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생산량 감소와 품질 저하를 초래한다. 또 노동력 감소는 결국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연결된다. 미국 최대 과일·채소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 노동력이 20∼40 감소하면서 농산물 손실 규모가 30억∼70억달러에 달하고, 소비자 가격 역시 5∼12 상승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미국 내 신선식품 물가상승 역시 이러한 구조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국내 공급부족과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인접한 멕시코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미 농무부(USDA)에 따르면 멕시코산 농산물 수입액은 이미 4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연평균 약 6 씩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과일·채소 수입에서 멕시코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50 ·70 를 상회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국 이민정책의 역설이다. 미국은 불법 이민 차단을 위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단속 강화를 추진해왔지만 정작 미국 농업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해 멕시코산 농산물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이동은 제한했지만 그 노동력이 투입된 농산물의 이동은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 이는 국경 통제가 반드시 노동 의존 구조 자체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미국 농업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농업 역시 고령화와 인력부족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미국산 농산물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다. 따라서 미국의 이민정책 변화로 인한 농업생산비 증가와 공급 불안은 결국 국내 소비자물가와 식량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식량안보는 단순한 농업생산의 문제를 넘어 노동·이민·무역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국가 전략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합리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농업분야 이주 노동자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주요 농산물 수입국의 노동력 수급 변화와 생산 여건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세계 공급망 불안이 일상화한 시대에 식량안보는 국경 안에서만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지성태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