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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산학협력 교수
농장동물 의료체계, 자가진료에 왜곡
수의사 정기진료·질병 예찰 강화해야
항생제 오남용 막고 방역 공백 줄여야
동물 복지·축산물 안전 담보될 수 있어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
흔히 마하트마 간디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출처는 확인되지 않은 문구이다. 우리는 농장동물을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사육하고 소비하고 있는가? 이렇게 사육된 동물이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는 축산물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 유일하게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축산업의 영역에서도 그러한가 자문해볼 때 고개를 젓게 된다. 안전한 축산물의 안정적인 수급과 축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과 복지, 축산물의 안전을 위해 수의사법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부터 면허를 받는다. 면허를 받은 수의사는 수의사법과 대한수의사회의 수의사의 신조, 윤리강령에 따라 활동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직업적 윤리는 농장동물 의료영역에서 지키기 힘들다.
동물이 아프면 수의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농장주가 직접 진단을 내리고 약품대리점에 약을 주문, 구매해 직접 치료한다. 수의사가 필요하더라도 동물병원이 아니라 사료회사나 약품 대리점에 요청하고 수의사의 진료를 받더라도 진료비를 직접 지불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다고 약국에서 약을 사면서 공짜로 의사의 진료를 받는 꼴이다. 사료나 약품을 구매할때 진료는 덤으로 제공된다. 수의사는 사료회사 등에서 진료비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하는 수의사가 사료회사 등의 이해관계와 상충되는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이가 아프다고 부모가 직접 진단을 해서 약을 먹인다면 약은 오남용되고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진료는 의사에게 받도록 의료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동물에게는 왜 이 간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까?
혹자는 수의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농장동물 수의사는 부족하지 않다.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수의사가 없을 뿐이다. 수의사가 부족한 때가 있어 농장주가 사육하는 동물에 대해 직접 진료하는 소위 ‘자가진료’가 아직도 수의사법 시행령에 따라 유지되고 있다.
혹자는 능력 있는 수의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능력 있는 수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농장동물 의료체계가 능력 있는 수의사가 진료 현장을 떠나도록 하고 있다. 반려동물 진료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따라 진료 기술이 발달해 왔다.
반면 농장동물 의료는 진료 시장의 위축에 따라 수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특히 돼지와 가금처럼 같이 축군을 진료하는 영역이 더욱 심각하다. 동물 의료시장의 수준이 수의사의 수준을 결정한다. 능력 있는 농장 수의사가 필요하다면 농장 진료가 활성화되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는 민간 수의사를 가축방역의 일선 집행자이자 조기 감지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기적으로 수의사가 농장을 방문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농장의 질병을 조기에 감지해 신고할 수 없다. 농장이 수의사에 의해 진료를 받아 건강이 관리되도록 농장동물 의료 시스템이 ‘자가진료’제도에 의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매년 발생하는 재난형 가축전염병을 조기에 탐지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수의사가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축이 아프면 수의사를 불러 진단하고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농장이 직접 증상을 감별해 신고하도록 하는 게 문제의 출발점이다.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수의사가 이상 증상을 잘 발견할 수 있다. 수의사법에 동물병원을 개설한 수의사만 진료와 폐사체에 대한 검안을 실시하고 있다. 예외 조항으로 시행령에서 허용하는 ‘자가진료’제도를 이제 폐지해야 한다.
덴마크는 다제내성 세균, 소위 슈퍼 박테리아에 의한 사람의 사망이 생긴 후 농장동물 수의사가 일정 규모 이상의 농장과 의무적으로 진료 계약을 체결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를 통해 수의사에 의한 진료 후 항생제가 처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모든 항생제는 수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수의사가 없어 항생제의 사용량이 줄지 않고 있다. 항생제의 축산물의 잔류는 꼼꼼한 감시체계로 잘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항생제가 많이 사용되지 않도록 수의사가 사전에 농장 위생관리를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항생제 내성을 실질적인 건강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이 축산물을 생산하는 농장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수의사에 의한 농장동물 건강관리가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가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수의사만이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의사 면허가 있다고 항생제 처방이 가능해서는 안 된다.
농장동물에서 항생제 내성균이 성장하지 못 하도록 동물의 건강과 복지, 축산물의 안전을 감시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수의사가 농장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항생제를 처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정기적으로 수의사가 농장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재난형 가축전염병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고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이런 제도를 ‘농장 주치의’, ‘농장 전담 수의사’, 일본의 ‘농장인정수의사’라고 부른다.
어떤 명칭이건 그 핵심은 농장에 수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농장동물의 건강과 위생을 관리하는 것이다.
농장동물 의료체계를 복원해 가축질병을 체계적으로 예찰하고 항생제 처방제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농장동물의 건강과 복지, 축산물의 안전이 담보될 수 있다. 농장동물 의료체계가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가 공무원 수의사를 통해 가축방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공무원은 방역정책을 결정하고 집행은 민간 수의사를 통해 수행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