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물수의사 없으면 인간 건강도 위험
기사링크: https://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566지난해 11월 14일,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에 위치한 ‘바이오노트실습동’에서 관리하는 소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김여진 기자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이하 서울대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는 소들이 산다. 연수원에 딸린 ‘서울대학교 대동물병원’에 아픈 소들이 입원해 있다. 강원도 평창, 충북 제천 등 각지에서 온 소들이 8개의 입원동에서 치료를 받는다. 또 다른 부속 건물인 ‘바이오노트실습동’에서는 수의대 학생들이 실습 목적으로 소를 키운다. 최대 300마리까지 수용 가능한 670제곱미터 넓이의 축사에 약 30마리의 소가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 4일 이곳에서 만난 이인형 서울대학교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장은 “이 친구들은 한 마리가 한 끼에 약 7천 원어치 사료를 먹어 치운다”라며 “한 달 사룟값으로 대략 600만 원어치를 먹는 친구들”이라고 소개했다.국내 단 하나뿐인 대동물 임상실습 기관서울대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은 국내 유일의 산업동물 전문 실습 교육 기관이다. 연수원은 처음부터 산업동물수의사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산업동물’이란 소, 돼지, 닭처럼 경제적 목적으로 키워지는 모든 동물을 뜻하며,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에서는 ‘산업동물’이란 용어 대신 동물복지를 강조한 ‘농장동물’이란 표현을 기준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크기로 따져, 덩치가 큰 소나 말을 따로 분류해 ‘대동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2011년 구제역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대동물수의사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고령화된 대동물수의사들의 나이는 직업군의 소멸을 우려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소를 진료하는 수의사들이 등록된 ‘한국우병학회’ 회원들의 평균 나이가 60세였다. 다음 세대의 유입이 절실했다. 이듬해인 2012년, 당시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이었던 류판동 교수와 부학장을 맡았던 서강문 교수, 기획실장을 맡았던 이인형 원장이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설립을 기획했다. 사업 추진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2012년 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에 예산을 신청했으나 기재부 등에서 반려되는 과정을 겪었고, 최종적으로 2012년 12월 28일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됐다. 이듬해인 2013년 1월 전국수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설립 사업 공모가 진행됐고, 최종적으로 서울대가 선정됐다. 당시 직접 사업 기획을 맡았던 이 원장은 “미래를 대비한 세대교체를 위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만든 연수원”이라고 설립 목적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단비뉴스는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 산업동물임상연수원에서 이인형 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김여진 기자“대동물수의사 부족, 교육에 책임 있어”서울대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실습 프로그램에는 제주대를 제외한 전국 9개 대학의 수의과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작년, 전국에서 온 729명의 수의과 학생이 이곳에서 실습 교육을 마쳤다. 수의학과 대학생이 이수하는 산업동물임상연수 프로그램은 크게 ‘기본 과정’과 ‘심화 과정’으로 나뉜다. ‘기본 과정’은 제주대를 제외한 전국 모든 수의학과 학생이 졸업 전 의무적으로 1회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2박 3일, 혹은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해당 과정은 산업동물임상수의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능력인 ‘데이원 스킬’(Day1 Skill)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소, 돼지 등의 대동물을 직접 보정(고정)하는 방법, 심박과 호흡, 체온, 위운동 등을 검사하는 방법, 예방 접종 방법, 채혈, 직장 검사(임신 여부, 발정 주기 확인) 등을 배운다. ‘심화 과정’은 11박 12일간 진행되는 선택 과정으로,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를 평가해 전국에서 30명 안팎을 선발한다. 본과 3학년, 4학년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뽑아 마취와 수술 등 데이원 스킬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교육한다.이 원장은 서울대 산업동물임상연수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최소한의 실습 교육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프로그램을 이수한다고 해서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각 수의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에서 대동물 임상실습의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가 지원 없이 대동물 임상실습은 불가능”전국의 수의과대학은 총 10곳이다. 수도권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와 사립대학인 건국대학교를 제외하면 나머지 8곳이 모두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 소속이다. 지방의 또 다른 수의학과에서는 산업동물임상실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재익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학과장은 “지역 국립대 수의과대학 자체 예산만으로 대동물 임상실습 시설을 구축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먼저 각 대학의 수의학과가 등록금을 통해 마련하는 재원이 대동물 임상실습을 위한 새로운 시설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각 대학 수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에 따라 교육부와 농식품부가 협의하여 결정하고 있다. 현재 전국 수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은 496명으로 고정돼 있고, 한 해 평균 약 50명의 학생이 각 대학의 수의학과에 입학한다. 여섯 개 학년으로 구성된 수의학과의 전체 인원을 고려하면, 대학별로 약 300명의 정원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각 수의학과의 정원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국립대 수의학과의 1년 등록금은 600만 원 수준으로, 2008년부터 18년째 동결돼 있다. 약 300명의 정원과 1년 치 등록금 600만 원을 가지고 계산해 보면, 등록금을 통해 각 대학 수의학과가 마련할 수 있는 예산은 연간 18억 원 규모다. 한 학과장은 “18억은 인건비도 마련할 수 없는 금액”이라며 “이미 각 수의학과별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 등록금 수입만으로 건물을 짓거나 기자재를 새롭게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등록금 이외에도 지방거점국립대학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에 내려오는 정부의 재정지원금은 100개가 넘는 각 대학의 학과가 나눠 사용해야 한다. 한 학과장은 “모든 학과의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대동물 임상실습 시설 설립이 대학 본부 입장에서 최우선 순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학과장은 각 대학이 산업동물실습교육 역량을 마련하려면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대 산업동물임상교육원은 총 71억 원의 설립 예산 중 50억 원을 농식품부 지원금으로 마련했다. 연간 운영비 역시 농식품부로부터 3억 원을 지원받는다. 이 예산은 대한수의사회를 통해 전달되며, 연수 교육비의 70 를 보조하는데 사용된다. 나머지 30 를 차지하는 예산은 교육비 명목으로 학생이 부담한다. 서울대에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이 설립되기 전 2013년 열린 공모 사업에는 서울대학교 뿐만 아니라 전북대학교, 경북대학교, 제주대학교가 예산 확보 경쟁에 참여했지만, 최종적으로 서울대학교가 선정됐다. 한 학과장은 “각 대학 수의과대학 차원에서도 대동물 임상실습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매년 방법을 고민하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해결이 어렵다”며 “대동물 임상실습이 각 대학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선 국가 예산이 투입돼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수의대생 열 명 중 아홉은 개·고양이 희망각 수의과대학에서 대동물 임상실습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학생들이 대동물 수의사를 진로로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1일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이하 수대협)가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 2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의대생이 원하는 수의학교육’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희망 진로(중복 응답)’에 대해 응답자의 91.8 가 ‘반려동물 임상’을 선택했다. 이어 유관 분야 기업(22.6 ), 대동물/산업동물 임상(21.2 ), 교수/학계(17.8 ) 순으로 나타났다. 중복 응답이 가능한 설문조사임을 고려하더라도, 반려동물 임상을 희망 진로 중 하나로 선택한 비율이 10명 중 9명에 달한다.각 수의과대학의 학제는 이러한 학생의 수요를 반영한 결과다. 한재익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학과장은 “학생들이 소동물(개·고양이)을 배우고 싶어 하지, 나머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요구 때문에 학제도 그쪽으로 천천히 기우는 것”이라며 “수의과대학 수업에서 반려동물의 비중이 70 인 것은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이하 수대협) 이은찬(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본과 3학년) 회장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반려동물 수의사에 몰리는 현상에 대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대다수 학생들이 반려동물 수의사를 희망하고 입학한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고, 수의과대학 교육과정이 반려동물 중심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요가 몰렸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해석이다. 그는 “누군가 반려동물 쏠림 현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면 되는데, 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학과장은 이러한 악순환에 대해 “공공성을 고려하면 대동물 임상실습을 포함해 보다 다양한 교육을 대학이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결국 교육도 수요가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학생들이 대동물수의사를 희망하지 않는 상황에서 각 대학이 대동물수의사 관련 수업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해 전북대학교 수의학과는 반려동물로 쏠린 수요를 분산하고, 각 동물 임상 분야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예과 2년에 본과 4년으로 구성된 기존 체제를 예과 1년에 본과 5년 체제로 개편했다. 기존 예과에 배치됐던 일반 화학·물리학·생물학 등 실질적인 임상 수의사의 역량과 관련성이 적은 과목은 삭제하고, 늘어난 본과 과정에서 농장동물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농장동물임상수의학I·II’와 ‘심화실습2(농장동물임상, 예방, 기초수의학 실습)’ 과목을 신설했다. 한 학과장은 “이러한 개편의 성패를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며 “각 동물 분야의 임상수의학 실습수업이 개설됐을 때, 농장동물 수업이 폐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재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와의 협력으로 대동물수의사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대동물 임상실습 교육을 운영하는 대학이 있다. 제주대학교 수의학과는 매년 여름방학 계절학기에 열흘간 산업동물임상실습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해 제주대 수의학과 재학생 16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수의학과 재학생 36명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국립대학 육성사업’이 교육 예산 마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당 사업은 교육부가 전국 37개 국립대학교가 역량 강화를 자율적으로 기획·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소, 돼지, 말 등 대동물을 많이 키우는 제주도의 특성상 대동물수의사 양성은 지역 내 수요와도 직접 연관된다. 2025년 가축 통계 조사(12월 1일 기준)에 따르면 제주도 농가에서 한우 3만 6천여 마리, 돼지 53만 5천여 마리, 말 1만 4천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이러한 농가들이 학생들의 임상실습 교육 장소로 활용된다. 농가가 실습 교육 장소를 제공하고, 실습 교육을 통해 양성된 대동물수의사가 지역 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교육프로그램을 총괄한 정효훈 제주대학교 대동물임상학 교수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동물 임상실습 교육이 학생의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실습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대동물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실습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원헬스 시대 더욱 필요한 대동물수의사지난해 12월 16일, 단비뉴스가 방문한 충북 제천 정해수(74) 씨의 축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2024년 8월 살처분으로 떠나보낸 12마리의 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소를 키우지 않는다. “팔기 위해서 기르는 동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떠나보낼 때는 내 자식 보내는 것같이 마음이 아팠다”고 정 씨는 말했다.기르던 소가 살처분된 이유는 소결핵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정 씨는 당시 자신의 소가 어떤 경로로 결핵에 걸렸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처분을 받아들였다. 정 씨는 “이게 병이 사람한테도 옮는다더라고”라고 말했다. 소와 돼지, 말 등 가축의 건강은 사람의 건강과 직접 연관돼 있다. 가축들이 앓는 질병 중 일부는 사람에게 옮는다. 이렇게 가축과 사람이 모두 앓는 질병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 부른다. 소결핵에 걸린 소의 비말에 노출되면 사람이 결핵에 걸릴 수 있다. 또 다른 인수공통감염병인 브루셀라병 역시 사람에게 옮는다. 소의 불임을 유발하는 ‘브루셀라균’에 사람이 노출되면 고열과 근육통을 앓는다. 브루셀라균에 오염된 우유나 고기를 섭취하는 경로로 사람이 감염된다.소결핵과 브루셀라 두 질병 모두 농가에서 흔히 발생한다. 국가가축방역통합시스템(KAHIS) 법정가축전염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소결핵은 305건, 브루셀라병은 70건 집계됐다. 해당 질병에 걸린 가축은 각각 1,136마리, 764마리였다.사스(SARS), 조류 인플루엔자 등 인수공통감염병의 세계적 확산 이후 국제사회는 감염병 문제를 인간만이 아닌 야생동물, 가축, 환경, 인간이 연결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2004년, 미국 뉴욕에서 발표된 맨해튼 원칙(Manhattan Principles)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원헬스’(One Health)개념을 명확히 선언했다. 원헬스는 건강에 있어 인간과 동물, 환경의 상호연결성을 인정하고,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종간 전파를 고려한 효과적 질병 관리를 위해서 사람, 동물, 환경 간의 통합적인 질병 관리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대동물수의사 소멸은 원헬스에 대한 위협이다. 정효훈 제주대학교 대동물임상학 교수는 “대동물의 전염병 문제는 사람의 건강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방역을 담당하는 산업동물 수의사가 양성되지 않는다면, 원헬스 문제가 앞으로는 굉장히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출처 : 단비뉴스(https://www.dan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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